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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먼 미래의 보상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마세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원래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내세) 50 : 살아서 누리는 천국(현세) 50.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이 비율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99가 되었고, 정작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에서의 삶은 그저 버티고 견뎌야 하는 대합실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왜 우리는 '죽음 이후'에만 집착하게 되었을까?
이해는 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현실은 곧 '지옥'이었으니까요.
전쟁, 가난, 독재... 눈앞의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희망을 둘 곳은 저 먼 하늘나라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고생 끝나면 저기 가서 금면류관 쓰겠지."
한국 교회는 이 '보상 심리'를 자극하며 성장했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로서의 천국을 팔았던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밥 굶는 시대는 지났는데, 마음은 더 허기집니다.
먼 훗날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불행을 참으라는 말은, 더 이상 50대 가장들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관심을 '지금, 여기'로 돌리면 일어나는 기적
제가 소셜 테이블을 차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먼 미래의 천국에 대한 관심을 잠시 내려놓고, 의도적으로 '지금 내 삶'을 천국으로 만들어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생기더군요.
첫째,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됩니다.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 전도해야 할 대상(실적)으로 사람을 보지 않게 됩니다.
대신 지금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이 사람이, 내 천국의 파트너가 됩니다. 그 사람의 숟가락에 밥 한 술 더 얹어주는 것이 가장 거룩한 예배가 됩니다.
둘째, '감사'가 '간구'를 이깁니다.
미래를 위해 달라고 조르는 기도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따뜻한 찌개 한 그릇에 대한 감사가 넘칩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는 결핍의 언어가 사라지고, 이미 주신 것을 나누는 풍요의 언어가 삶을 채웁니다.
당신의 거실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 사랑과 평화가 흐르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천국입니다.
지옥 같은 직장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누군가 나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셜 테이블이 있다면, 그 순간 그곳이 바로 천국 아닐까요?
우리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살려고 믿는 겁니다.
오늘, 당신의 식탁으로 천국을 초대하세요.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1)